마음의 영성

쥴 슈발리에 신부의 카리스마에 따른 마음의 영성 202007

 

제 29 장 “예수성심의 어머니”

 

슈발리에신부님_마음의 영성용 사진

 

 

 

“예수성심의 어머니”라는 이름을 전파하기 위하여, 슈발리에 신부는 당대 주요 신심이었던 예수성심신심과 성모신심을 통합하고자 원했습니다. 이 입문 프로그램 제16장에서 우리는 예수성심의 어머니의 세 가지 공통적인 이미지를 설명하였습니다. 이 이미지들은, 슈발리에 신부가 항상 성모님을 예수님의 어머니로서 영광스럽게 해드리고자 하였음을 알려줍니다.

얀 G. 보벤마르스(Jan G Bovenmars, MSC)는 그의 책 “예수성심의 어머니”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슈발리에 신부의 카리스마에서 예수성심이 핵심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 특별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측은지심의 육화입니다. 슈발리에 신부나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일은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그렇지만 일의 시작 단계부터 거기에는 성모님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859년 삐쁘롱 신부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슈뎅에 예수성심성당의 첫 번째 단계 건축을 하고 있을 때 (후에 예수성심의 어머니 대성당으로 격상됨), 슈발리에 신부는 예술가에게 “예수를 향하여 팔을 뻗고, 겸손하게 아래로 시선을 둔” 성모님을 나타내는 창문 디자인을 부탁하였습니다. …… 12살 정도 되는 어린 예수가 그분(성모님)의 앞에 서 있게 되어있는 것인데, 한 손은 그의 심장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은 그의 어머니를 향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복음서 저자 성 루카가 어린 예수는 12살이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를 친척들 사이에서 찾아보고 나서, 율법학자들 가운데에 있는 예수를 발견하였다고 성 루카는 적으며 또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는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카 2,51)

 

 

후에 바티칸은 슈발리에 신부에게 이 이미지를 바꾸도록 요청했습니다. 그 이유는 슈발리에 신부의 의중과는 모순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 어린 예수는 어머니의 발치에 앉아있는 어린 아이처럼 훨씬 어리게 묘사되기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슈뎅과 씨타르트(Sittard)에 있는 것과 같은 첫 번째 조각상과 그림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도록 하고, 1878년부터는 어머니의 팔에 안겨있는 어린 예수의 모습을 새로운 이미지로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는 예수성심의 어머니 신심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따라서 그 묘사도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성심의 어머니는 주로 십자가상 아드님의 뚫린 상처를 바라보는 성모님으로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동고(銅鼓)상이 하나 만들어져서 그때부터 이슈뎅의 바실리카에 모셔져 있는데, “이슈뎅의 갈바리”로 불렀습니다. 십자가 밑에 계신 성모님이 한 손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난 가슴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은 우리를 십자가상의 예수님께로 인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성심의 어머니 딸회’의 제랄딘 도어티(Gerardine Doherty FDNSC)는 본인의 저서 “마리 루이스 하르츠(Marie Louise Hartzer)와 함께”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은 그의 아들이 공식적으로 처형되는 동안 그 자리에 계셨습니다. 성모님은 또한 폭력적인 피해로 비롯된 자신의 고통과 슬픔을 예수님과 함께 그리고 예수님을 위하여 묵묵히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고통 중에 계신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자하는 성모님의 열망은 동시에 고통당하는 사람들과의 변함없는 연대의 표현이었습니다!(50쪽)

 

 

 

 

예수성심회보 7월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