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1130 토 묵상강론 마태 4,18-22 [ 예수님의 공생활 그리고 나의 수도생활의 목적은 ]


20241130 토 묵상강론 마태 4,18-22
[ 예수님의 공생활 그리고 나의 수도생활의 목적은 ]

우리는 교회를 순례하는 공동체라고 자주 표현합니다. 우리 신앙의 삶을 이야기할 때도 신앙의 여정을 간다라는 표현도 자주 씁니다.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은 고전문학의 서사에는 일정한 구조가 있습니다. 요즘 우리에게 인기 있는 드라마들도 마찬가지죠. 대략 12부작의 드라마는 이런 구조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1-2화에서는 세계관이 설명되고 주인공이 선택되고 목표나 꿈을 가지고 여정을 떠납니다. 3-4화에서는 잘 나가다가 첫 번째 갈등을 만납니다. 5-6화에서는 갈등의 위기가 고조됩니다. 7-8화에서는 전환과 클라이막스를 맞이하는데 주인공의 실수로 큰 위기가 폭발하거나 적대자와 본격적으로 대립합니다. 9-10화에서는 조력자를 만나 적대자를 물리치고 갈등이 해소되는 듯한데 새로운 적대자가 나타나 다시 위기를 만납니다. 11-12화에서는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하며 목적을 성취하고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거나 새로운 여정을 떠납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정연이도 이 서사구조를 거의 따랐습니다. 십여 년 전 첫 화가 개봉되었던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가 반지원정대를 이끌고 떠나는 여정도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우리의 고전인 흥부전에서 흥부가 밥을 얻으러 놀부 집에 가서 주걱으로 뺨을 맞고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여정에도 이런 서사가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이런 서사구조를 따라 예수님의 공생활을 따라가 보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첫 번째 유혹을 이기시며 공생활의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제자들을 모으고 군중을 가르치시며 잘 나가십니다. 그러다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과 대립하게 되고 점점 그 갈등은 고조됩니다. 성전에서 상인들을 몰아내시고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의 가식을 꾸짖으며 예루살렘 입성 때에 큰 환호를 받습니다. 하지만 곧 새로운 적대자 예루살렘의 기득권 세력과 유다의 변심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십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며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학의 서사구조를 따라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다 한 지점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지막 화에서 주인공이 하는 목적의 성취 부분입니다. 드라마 정연이는 적대자와 목의 부러지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훌륭한 국극 배우가 되겠다는 목적을 이룹니다. 프로도는 싸우론을 이기고 절대 반지를 파괴하는 목적을 이룹니다. 흥부도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목적을 이룹니다. 그러면 과연 예수님이 공생활의 여정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질문을 한동안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되시나요? 예수님이 공생활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묵상하게 된 예수님의 공생활 목적은 세상의 급격한 변화나, 선의 완전한 승리나, 인간의 특별한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제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각자 자신의 여정을 떠나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선교사의 정신이며 우리 수도회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이 묵상은 오늘 저의 여정을 다시 점검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자주 변하지 않는 세상에 답답해하며 낙담 합니다. 선이 맥을 못 추는 현실에 분노 합니다. 잘 변하지 않는 자기 모습에 슬퍼합니다. 하지만 오늘 묵상하며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선이 악을 이기게 한다거나, 제가 성인처럼 변한다거나 하는 것이 저의 수도 여정의 최종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저의 수도 생활의 목적은 이런 부조리한 세상 안에서도 나의 여정을 담담하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복음을 선포하여,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어 이 여정을 떠나도록 하는 것이야 하는 것을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사도 안드레아가 예수님의 삶을 이어 여정을 계속했듯이, 오늘 우리도 사도 안드레아의 삶을 이어 여정을 계속해 가야 한다고 묵상하게 됩니다.

고전문학의 서사구조처럼, 예수님의 삶처럼, 그리고 사도 안드레아의 삶처럼 우리 삶에도 갈등이 있고 위기도 있을 겁니다. 또 우리의 실수로 큰 위기가 폭발하는 때도 있을 겁니다. 또 내일부터의 미래에 새로운 위기와 적대자를 만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도 조력자 성령을 만나 그 위기를 극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여정을 계속 가서, 마침내는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이어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하는 예수니의 목적을 함께 성취할 수 있을 것임을 오늘 복음 묵상을 통해 믿게 됩니다.

전례력 상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오늘 우리 함께 우리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도 다른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그들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오늘 우리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며 우리 자신의 여정을 담담히 계속 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