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에서 묵상하기

20240621 연중 11주 금요일 묵상강론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마태 6,19-23 [오늘 내 보물은 뭐였지?]

 

 

수도자라고 해서 다른 수도원에 갔을 때 항상 집처럼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관 수도원 같은 곳에 가면 그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마더 테레사가 창립한 사랑의 선교 수녀회에 가면 내가 너무 많이 가지고 사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수도원에 피정을 갈 때면 항상 그 수도원의 모습 자체로 저에게 하느님께서는 무언가 말씀하시곤 합니다.

부제품 준비 피정을 다른 수도원 수사신부님 지도로 하게 되었습니다. 사제품을 준비하던 선배수사님들과 종신을 준비하던 후배 수사님과 함께 그 수도원에 피정을 하러 갔습니다. 피정을 지도해 주시기로 한 신부님을 저는 처음 들었지만 강론도 잘하시고 책도 쓰고 검소하고 또 어렵게 사제가 되신 유명하고 훌륭한 분이시라며 저와 잘 통할 거라 하시도 또 피정을 기대하는 수사님들을 보면서 저도 조금 기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방에 옹기종기 일인용 책상에 앉아 시시덕 거리며 신부님이 피정 오리엔테이션을 위해 들어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고 문이 열렸습니다. 머리를 곱게 삭발하시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의 신부님이 수줍게 들어오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검소하고 훌륭하다던 신부님이 왼손에 아이패드를 들고 들어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부제품부터 사용이 허락되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여기저기 중고사이트에서 알아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손에 들린 아이패드 하단의 스피커 구멍의 생김새만 보고도 모델과 가격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보고 있던 중고품 모델보다 훨씬 좋은 신제품 최신 모델이었습니다. 지금은 조금은 달리 느껴지지만, 그 당시 한 달 용돈이 삼만 원 대였던 저에게는 매우 매우 비싸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수도자가 저런 걸? 하면서도 제 눈은 순식간에 거기에 가 꽂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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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세우고, 손가락으로 넘기고, 애플펜슬로 터치하고 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것을 눈 앞에서 처음 보게 되었으니 저의 눈은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순간부터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때까지 저의 눈은 거의 한 곳에 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패드예요. 부제품 준비 피정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인데 말이죠.

그날 저녁 이런 저런 묵상을 하는 중에 아이패드를 보던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잠시 동안 저의 마음은 제 눈과 함께 부제품 준비를 떠나 그 아이패드에 가 있었어요. 그 순간 저에게 가장 큰 보물은 아이패드였던 겁니다. 수도원의 성스러운 분위기도, 신부님의 좋은 인상과 통찰력 있는 말씀보다 아이패드의 디자인과 생산성이 저의 보물이었던 겁니다. 거기에 제 마음도 있었던 겁니다.



오늘 하루 무엇에 눈을 더 많이 두었나 묵상해 봅니다. 시계, 핸드폰, 코칭 도구, 코칭 해드린 선생님, 묵상글그림 쓰는 아이패드, 피정 오신 신자분들, 수도원 미래에 대한 상상. 오늘 제가 눈을 많이 둔 것들입니다. 오늘 하루 제 보물과 제 마음이 있었던 곳들입니다. 그리고 그 보물들이 하느님과 나 사이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디에 눈을 많이 두셨나요? 어디에 여러분 마음을 많이 두셨나요? 오늘 여러분은 어떤 보물을 갖고 하루를 보내셨나요?